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형제는 정말로 용감했다.
Posted 2009/04/18 01:23척박하던 재수생활을 보내던 도중, 어머니께서 뮤지컬 티켓 2장을 선물해주셨다. 이유는 많이 접해봐서 손해볼 것 없지않냐 였다. 마지막으로 뮤지컬을 보았을 때가 언제인가. 아마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단체 관람으로 봤었던 <넌센스>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꼴에 '극작과'를 희망하는 사람인데도 뮤지컬이라는 존재자체를 망각하고 살았던 나였다. 어머니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친구와 공연장으로 갔다.
갑자기 연락을 한터라 부랴부랴 달려오는 친구 덕택에 우리는 2층에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엄연히 좌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2층으로 보내는 것이 처음에는 불쾌했다. 하지만 공연 중에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잠잠코 2층으로 올라갔다.
<형제가 돌아왔다>의 시작은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지내던 두 형제(석봉,주봉)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같은 듯 하지만 전혀 다른 석봉과 주봉.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다단계까지 하다가 결국 탕진까지 이르게 된 석봉.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욱하는 성격때문에 데모에 참여했다가 대학에서 짤리고, 고시공부를 하는 주봉. 두 형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아버지를 닮았다'라는 말이었다.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람이 바로 아버지인 춘배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두 아들. 아버지의 조의금 배분으로 싸우던 날 밤, 옆 집에 사는 사람이라며 미모의 여인인 오로라가 등장한다. 오로라는 춘배가 죽기 직전, 자신을 찾아와 로또에 담청된 복권을 집에 숨겨놨다고 전하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리하여 두 형제는 로또 당첨금을 가지고 오로라와 같이 사는 환상을 품고 티격태격하다가, 주봉이 우물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숨겨졌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가 공개된다.
어머니는 일찍이 안동종갓집의 며느리로 살아왔고, 치질로 죽음에 이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캐릭터였다. 그런 어머니는 두 아들의 힘겨운 뒷바라지를 한 탓인지 치매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죽기 직전 아들들에게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춘배에게 전한 후 눈을 감는다. 아내의 유언을 따라 두 아들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아들들과의 관계를 끊어온 춘배. 두 아들은 어머니의 유품을 보고는 아버지를 이해했고 이윽고는 화해를 하며 끝 마친다.
이 뮤지컬은 캐릭터가 살아있어서 인상 깊었다. 자식들에게 추레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인 춘배의 깊은 이유는 보는 이의 마음을 충분히 울렸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는 한없이 보살펴지는 존재인 석봉과 주봉은, 사회에서는 전혀 보살펴지지 않았다. 보석 대신 돌맹이, 돈 대신 종이 쪼가리를 쥐어주었던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대조하여, 사회는 그들에게 주식에 실패한 백수, 데모만 하는 고시생의 꼬리표만 달아주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에게 '써써써 썩을 놈, 주주주 죽일 놈'이라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같이 뮤지컬을 한 몫 살렸던 장치는 '공간적 배경'에 아이러니하게 사용되는 '음악'이었다. 춘배의 장례식에서 비트 강한 음악을 틀고, 힙합 퍼포먼스를 하는 것만 보아도 말 다했다. 울어야 할 상황에서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고, 웃어야 할 상황에서 코 끝이 찡해지는 그런 아이러니. <형제는 용감했다>는 아이러니를 잘 버무린 뮤지컬이었다.
어떤 이는 <형제는 용감했다>가 한국정서에 잘 맞는 뮤지컬이라 칭하며, 그 때문에 이 뮤지컬이 성공했다고 했단다. 하지만 나는 보편이라고 본다. 언제까지 '한국정서'라는 틀 안에서만 갇혀 있을 것인가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보편이 곧 진부가 될 수는 없는 법. 나는 '한국 정서'에 맞아서 성공했다기 보다는, 입체적인 캐릭터와 이 뮤지컬의 아이러니가 성공의 요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정서'라는 보편에 당당히 들어가 수 많은 매력을 뿜은 이 뮤지컬, 정말로 형제는 용감했다.
'공연 씹덕후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형제는 정말로 용감했다. (0) | 2009/04/18 |
|---|
